헌법 1조에서 말하고 있듯이.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권력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즉 사람, 사람이 모두 권력의 생산자이자 주체자로서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며 저마다의 특기로 조화로울 수 있는 사회를 말한 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이런 민주주의의 정의에 비추어 보면, 자본민주주의란 말은 굉장히 억지스럽고 왜곡적이란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사람이 아니라 자본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방식이 자본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자본민주주의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절대적이다.
그래서 자본민주주의에서는 공공의 개념이 빈약하다.
의료, 교육, 언론 등, 사회의 공공 개념으로 간주되어져야 할 부분들 모두가 개인의 권리 영역으로 치부되고, 그래서 이들 서비스에 대한 부자와 빈자의 차이는 확실해진다.
한마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자본=권력)가 성립하는 시스템이다.
교육비는 서민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치솟으며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이는 의료나 언론 등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이 소유한 언론들은 권력에 편향하여 논조와 편집권을 자기 마음대로 왜곡한다.
한국의 일부 주요 신문들은 자신의 권력 추구를 위한 정치유착, 경제유착으로 왜곡된 기사들로 채워 국민들을 세뇌하기에 바쁘다.
차마 신문이라고 이름붙이기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당연히 자본을 많이 가지지 못한 서민들의 권리에 대해서 언론들은 일말의 관심조차도 없다.
특히 자본의 도구화된 언론은 사람들을 이간질시키고 본열시키며 사람들로 하여금 왜곡된 현실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게 한다는데 있어서 더욱 문제가 크다.
민주사회를 지켜야 할 보루로서의 언론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해체하고 자본권력의 독재를 위해서 존재하는 꼴이 된 것이 오늘날의 사회현실이다.
이처럼 자본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실재 그 작동방식에 있어서는 철저히 민주주의를 해체하는 방식으로(사람들의 권리를 뺏어서 자본에게로 몰아주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자본민주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사람들을 기만하기 위해 조작된 언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자본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경계가 분명하지는 않다.
자본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공공부문을 강화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성격을 어느정도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본민주주의를 강조하며 교육, 의료, 언론, 식수, 에너지 등의 공공서비스가 소유자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방식으로 왜곡되고, 이 왜곡의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이 당연시될 때이다.
이 때에 이르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는 고사될 위기의 상황이다.
지금 한국의 사회는 바로 이 지점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빈부의 격차는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고 사회는 개인주의와 범죄로 넘쳐나는 불행한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이루려면 국민이 사회의 공공부문에 권리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에너지와 교육, 의료 등, 공공부문들은 사회의 안녕을 위해 국가가 더욱 많이 투자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이에 대한 투자를 외면하고 이들 영역을 자본의 자유경쟁영역으로 몰아넣는 것은 국민의 필요를 외면하는 직무유기에 다름 없다.
국민의 공공적 필요를 외면하고 자본의 자유경쟁에 모든 것을 맡긴다면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각종 세금을 뜯어낼 이유가 없다.
국민은 민주사회를 이루라고 국가에 각종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지, 자본차구치의 세상을 만들라고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다.
언론의 기업 구조에 대한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조명될 필요가 있다.
언론은 사회를 개인과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공공적인 성격이 강한 부분이다.
이러한 언론이 소유자의 이익(자본기득권자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이라면 이는 사회의 공기(公器)가 아니라 민주사회를 위협하고 해체하는 암적인 존재밖에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언론의 공기적(公器的) 역할은 민주주의를 선택한 국민들의 권리에 해당하는 문제이다.
이미 사기업들이 소유한 언론을 사회공공의 영역으로 환원할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 뿐이다.
바로 소유와 경영(인사)을 분리하는 것이다.
즉, 언론기관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것은 언론기관의 선택이 아니라 국민들의 몫이며 선택인 것이다.
언론기관의 인사시스템은 소유자가 결정하는 하향식 방식이 아니라 기업 내부 종사자들이 결정하는 상향식 방식이 옳다.
그럼으로 해서 언론은 개인의 기득권과는 최대로 멀어지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언론은 사회와 개인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공기(公器)의 기능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영역이다.
민주주의사회에서 사회적 공기(公器)의 기업구조를 선택하는 것은 국민들이 몫이며 선택이다.
민주사회를 지키는 것에는 시민의 권리인식과 단결된 행동력 밖에는 없다.
기득권자들의 저항이 있다면 이는 매국적 소행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