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를 엄격하게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한 사회에 있어서 권력의 분포상태로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즉 민주주의란 권력이 다수의 집단이나 시민들에 주어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권력이 특정집단이나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으면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로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부의 권력집중을 방지하기 위한 권력분립이나 의회주의이다. 이것은 근대국가 이후에 성립된 제도로서 정부의 권력이 국왕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다른 하나는 지방자치이다. 지방자치는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견제하고 지방의 독자적인 권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1987년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달성하려는 6월 항쟁의 결과로 1990년대부터 시작된다. 즉 지방자치는 1991년의 지방의회의원 선거와 1995년의 단체장 선거로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20여년이 지난 현재 지방자치를 통한 민주주의는 달성되고 있는가, 다시 말하면 중앙의 정치권력에 의한 지방의 지배현상이 아직도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선거에 있어서 중앙정당이 공천을 통하여 지방의 선거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지방자치 본래의 의미인 지역문제가 실종된 가운데 ‘대선의 전초전’ 그리고 ‘정당의 대리전’으로 치러진 선거였다. 그 결과 지방자치는 여전히 중앙정치에 예속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가 아직 그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지 못한 채, 많은 지역주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무릇 지방자치, 그리고 나아가 민주주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방선거에 있어서의 정당공천제의 운영여하이다. 즉 지방선거에서 공천 등 중앙정당의 개입을 인정할 것인가, 그리고 정당공천제를 인정한다면 그 운영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정당공천제를 인정하면서도 상향식 공천 등에 의하여 중앙정당의 지방선거 지배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천 등 지방선거에서의 중앙정당 공천여부는 지방자치가 재개된 1991년부터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방선거에서의 중앙정당 공천은 일관되고 합리적인 논거에 의하기보다는 중앙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그때그때의 상황논리에 의하여 파행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1991년의 지방의회선거에서는 여야간의 의견대립 끝에 광역의회의원선거에서는 정당공천을 인정하였으나 기초의회의원선거에서는 정당공천을 배제하였다. 그러다가 1994년 여야간 합의로 제정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현 공직선거법)에서는 기초와 광역을 막론하고 정당 공천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개정된 이 제도는 시행도 되기 전인 1995년 6월 통합선거를 앞두고 기초단위에서의 정당공천배제를 주장하는 여당과 지방의원선거에 대한 정당공천배제를 주장하는 야당간 대립과 타협의 산물로서 기초의회의원선거에서만 정당공천을 배제하기로 하였다. 그러다가 2005년 6월에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여 지금까지 금지하던 기초의회의원까지도 정당공천을 허용하게 되어 현재는 기초와 광역의 단체장과 의회의원 모두 정당공천을 허용하고 있다. 즉 지방선거에서 중앙정당이 전면에 나서 영향력을 행사하여 지방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개선안으로 지방의 정치가 및 학계에서는 끊임없이 지방선거에서 중앙정당의 공천제를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제도의 개선으로 현상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이다. 법이 금지한다고 해서 정당이 지방선거를 순순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지방선거에서 이른바 내천이 공공연히 이루어진데서도 입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당의 공천배제는 정당으로 하여금 위법행위를 하게 함으로써 범법자를 양산할 뿐만 아니라 탈법정치를 구조화시킬 것이다. 또한 정당들은 선거 후에 지방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당선자에게 접근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을 현실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정당공천을 현실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유지하면서도 정당의 지방에 대한 영향력을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정당의 민주화 내지는 권력의 분산이 필요하다. 비민주적이고 집중적인 정당구조 하에서 정당이 지방선거 과정에 개입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당의 민주화 내지는 권력의 분산을 통하여 중앙정치가 지방선거에 개입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별로 후보경선제를 민주적으로 시행해야 할 것이다.
둘째, 정당의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정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을 때에는 유권자들의 높은 선거의식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정치의 문제를 지방에 가져와 지방을 지배하려는 정당 또는 그 정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자를 유권자들이 지지하지 않으면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 자가 감소할 것이다. 일본의 예가 그렇다. 중앙정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한 후보자는 대부분 낙선되므로 지방선거 후보자들은 스스로 공천받기를 원하지 않거나 정당이 후보자를 공천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벌어진다면 지방선거에 있어서 중앙정당의 지배현상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지방자치, 나아가 민주주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